기독교

창조 위키
Cross bible large.gif

기독교는 약 21억 4천만명의 신도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이다. 기독교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성경의 신약 성서와 이에 따른 역사를 근본과 기본 이념의 중심을 두고있다. 예수의 시대에 그를 믿는 신도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였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 후에 비유대인들도 예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교우", "신앙인", "선택받은 자", "성인", "믿는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나 로마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혹은 작은 예수들이라는 의미에서 근원하였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주의 기름 부음을 받는자"라는 의미인 Christōs라는 단어에서 변형되었다.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서에서 딱 세번뿐이 나오지 않는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제자들이 안디오 감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고 나머지 두번은 사도행전 26장 28절과 배드로전서 4장 16절에 나온다. "기독교"는 이제 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일컫는 말로 알려져있다.


예수 그리스도

Rembrandt의 작품 Jesus on the Cross´. Canvas on panel, 1631. Le Mas d´Agenais, parish church.

예수 그리스도, 혹은 나자렛 예수는 히브루어로 메시아라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육체적 전세,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지구에 왔으며 완전한 인간으로서와 하나님으로서 구원과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음을 맞이하였다. 예수는 기원전 5년 즈음에 베들레헴에서 동정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갈릴레이 나자렛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목수인 나자렛 요셉이 그의 아버지이다. 예수는 34년 4월경에 유대인들의 다섯번째 대리인인 본시오 빌라도 통치아래에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다.예수의 죽음과 삶과 생애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는 기독교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종교를 탄생시켰다.

요한 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이라고 표현한다.

  • 예수는 그리스도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예수는 창조주이다.


예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지구에 보내졌다는 믿음을 근본하고 있다. 그 믿음은 생명의 구원인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까지 포함한다. 그는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음을 당했다.

회개 회개란 죄악에 빠진 마음을 돌려 하느님의 은혜의 세계로 복귀시키는 일련의 행위이며 참회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방향전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현 존재를 사로잡고 있는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힘을 빌려서 가능해진다. 요한 14장 6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삶이다." 라고 표현한다.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약속이며 부활에 대한 증거이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 설명이 나와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계에 이러한 정신을 퍼트리는것에 대한 약속을하고, 천국을 보상받았다.


하나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또한 신성한 의식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단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혹은 이집트인들이 믿는 신이 여러 명이라는 이념과 반대되는 사상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신앙 서약은 단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고, 하나님은 한 분이 시라는 것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구약 성경인 레위기 19장 4절에 나와있다. 또한 이것은 모세가 말한 십계명 중의 하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출애굽기 20:3

신약 구절은 고린도서를 중점으로 두고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은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 고린도전서 8:4

다른 신들 이라는 것들은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문화인 신화적인 믿음에서 따온것이다.

"삼위일체의 방패". 이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고 성령을 나타낸다.

삼위일체

삼위일체는 기독의 중심적인 생각이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라틴어로 3을 나타내는 Trinitas라는 단어에서 기원되었다. 이 단어는 성경의 어떤 단어와도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업다. 그러나 성경의 교리는 성경 전체에서 퍼져 나온 말들이다. 삼위일체는 아버지인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성령을 하나로 여기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기독교의 변증론

기독교의 변증론은 기독교의 학문 중 하나로서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적힌대로 신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입증을 해주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말하길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하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 개인의 신앙심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신적인 의무이다. “변증론”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인 “apologia”에서 유래된 “방어”라는 뜻이다.

기독교 변증론의 성격과 기능으로서의 좋은 정의는 베드로가 고린도후서 10장 3-6절에 잘 설명해 놓았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오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이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성경에 나오는 야곱서의 변증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정의한다. 야곱은 그의 친구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의 충성심과 하나님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한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다른 이교도들의 신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점을 그의 책에서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절대 배반하지 않는 충성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찬송가 14장과 19장 역시 변증론에 관한 구절이다. 로마서 1장 20절 또한 변증론에 대해 힘을 더해주는데, 자연의 대단함은 지적이고 전능한 존재인 하나님이 존재함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사도행전의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메시지는 한때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 자주 사용됐다.

역사적 배경

예수의 시대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이스라엘은 수 백 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기원전 332년경에 유대교는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포위되어 있었었다. 그 당시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왕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인을 통치함으로써 굉장히 좋은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으로 인해 두 나라는 분단이 되었고, 셀레우코스 제국의 헬레니제이션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헬레니제이션의 정점은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의 사원에 돼지를 수치스럽게 희생양으로 바쳤을 때였다. 이 사건은 유다 마카바이오를 중심으로 기원전 165년에 일어났던 안티오쿠스에 대한 반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성지에 대한 시각은 아직 다양하다. 이두마이안 가문과 와 특히 헤롯의 가문이 만났을 때, 성지에 대한 분쟁이 극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지는 그 누구나 와서 왕국을 짓기에 취약한 곳이라는 오점을 남겼고, 폼페이우스 대왕이 중동시방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왕국을 짓고있었다. 폼페이우스 대왕은 성지를 차지했으며, 그의 뜻대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대변동이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 성지에 영향을 끼쳤다고 믿는다. 줄리우스 시저는 로마를 위해 서유럽을 제패했으며, 로마의 시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모든 반란세력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로마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기원전 44년에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계인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위해 행군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15일, 24명의 의원이 줄리우스 시저를 암살했다. 이로인해 로마제국은 15년만에 새로운 혁명을 맞이했다. 헤롯대왕은 마르커스 안토니우스와 처음부터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안토니우스가 아우구스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쫓기자, 그의 충성심은 아우구스투스에게 기울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을 하게된다.

사회적 배경

성지는 로마로부터 약 60여 년 동안 통제를 받았으며 아주 끔찍하고 불안한 장소로 꼽혔다. 로마인들은 세금을 직접적으로 걷지 않는 대신에 “파블리카니”라 불리는 세무관리사를 지역마다 고용했다. 이 파블리카니들은 세금을 마구잡이로 걷었으며, 나라가 명령하지 않은 세금도 걷고 그들의 개인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파블리카니들은 도둑놈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악의 현상은 유대인과 샬마니저르 5세의 후손들인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더욱 더 심해졌다. 샬마니저르는 왕국을 북쪽으로 넓혔던 장본인 이였다. 그의 조국주의적인 감성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더욱 깔보고 무시하는데 일조를 했다.

유대인 성직자들은 세 종류로 분류되었다. 첫째로 바리새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 당시의 보수당이였으며, 매우 깐깐하고 보수적으로 유대인들의 법과 풍습을 관리했다. 두번째는 사두개교도였다. 이들은 그 당시에 자유를 믿는 쪽이였으며, 헬레니제이션을 통해 유대교에 관한 그 어떠한 것도 믿지 않았다. 마지막은 에세네파의 신도였는데, 이들은 금욕주의이고, 신비주의의 한 파였다. 그들은 구약 성서에 대해 특별한 믿음을 갔고 있었으며, 그 어떠한 정치적인 관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중에 감성이 가장 정점이였던 시기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의 약속을 이사야와 다니엘이 예언을 했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로마와 맞서 싸울 정치적인 리더로서의 구세주를 찾기 시작한다.

예수의 생애

예수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의 총 인구수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즈음에 태어났다. 예수가 18살이 될 즈음에 아우구스투스는 독약을 먹고 죽었으며, 티베리우스가 다음 로마제국을 이끌어 갔다. 티베리우스는 예수가 세례를 받고 그의 복음을 전한 15년동안 로마를 통치했다.

예수는 사람들의 기대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세무관리사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예수는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그 행동을 그만 둘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세무관리사 중 한 명은 가장 긴 가스펠을 쓰기도 했으며 예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마태이다.) 더욱이 예수는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막기도 했다.

바리새인은 예수를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인물로 여겼다. 그 이유로 인해 바리새인은 예수의 신용을 뭉개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기로 결정한다.

예수의 부활은 바리새인들을 경계를 다시 단단히 고치게 한다. 그들은 로마 경비들에게 뇌물을 주었지만, 경비들은 자신의 상관에게 자신들이 조는동안 예수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실로 인해 경비들은 처벌을 받게된다.

예수 이후의 역사

Christianity Branches.png

열두명의 제자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여러곳에서 많은 순교자적 고통을 겪는다. 로마의 공식적인 기록은 신약 성서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이 진실이라고 증명한다. 이는 교회의 목사들이 기록한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았을 당시의 증인들에 따르면, 기독교가 퍼질 당시, 처음 3세기 동안은 종교적 박해가 심했다고 한다. 이는 약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증언한 것이며, 이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을 봤다고 증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집권을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황제는 십자가의 존재를 믿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집권이 끝난 수 세기 후에 기독교는 다시 한번 박해를 받기 시작하지만, 로마에서 만큼은 박해가 심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아일랜드에서 노예로 잡혔던 로마와 영국의 혼혈인 성 패트릭은 그 곳에서 배를 타고 탈출을 하여 그의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프랑스에서 목사로서의 공부를 수 년간 했고, 그는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아일랜드에 전파한다. 한 세대만에 섬 전체에서 드루이드에 관한 마녀사냥이나 인간의 희생과 구원은 한 순간에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변질된다. 이와 같은 일들은 수 세기동안 다른 곳에서 수 차례나 일어났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로인해 책에 관한 열풍은 영국으로 퍼져가고, 또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심지어 이 열풍은 동양까지도 퍼지게 되며, 문맹퇴치에 아주 큰 영향을 행사한다. 이러한 필경사는 그리스어와 로마어로 대부분이 기록 되어 있으며, 이 기록은 오늘날 까지도 전해져 오고있다.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를 비롯 여러 통치자들은 그들의 학자들은 모은 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이는 오늘날의 대학으로 불리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의학적인 전파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의 병원의 모습을 띄게 됐다.

World map of religions.
Christian percentages by country.

구텐버그의 복사의 발명은 성경을 전파하는 것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일에 큰 기여를 한다. 이로 인해 많은 과학기술이 발견되기 시작했으며, 좋은 예로는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 까지도 과학계에 가장 큰 발견으로 손꼽힌다. 뉴턴 외에도 유명한 과학자들이 많았는데, 발명가나 창조가들은 창세기를 읽으며 많은 발명을 할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발명가들이 아이디어를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됐던것도 성경의 시작이며 가장 신뢰받은 이야기이고, 세상의 시작인 창세기로 꼽힌다.

기독교는 유럽의 영토확장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유럽에서 성경의 영향이 굉장히 커지며, 인디언들을 비롯한 많은 원주민들이 그릇된 희생과 식인, 혹은 잘못된 편의시설들 같은 악행, 즉 오늘날의 타부로 일컫는 행동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독교계에서 예수가 지은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악과 대응하기 위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같은 모든 행동들은 예수가 좋은 것들은 위해서 근본적인 악질과 싸워 온 것이다. 예를 들면 윌리엄 위버포스는 그의 삶을 성경 전파와 빈부격차 해소 등, 성경적인 일들은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했다. 이러한 전설적인 일들을 예수과 기독교가 세상에 선물한 것이다.

References